* 부상 / 사망 / 자살 소재 주의






  창문을 후두기는 빗소리, 어두운 하늘, 물기를 머금은 공기. 며칠째 계속된 장마 덕에 쿠니미는 오늘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는 소파에 기대어 소금 캐러멜을 씹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습한 날씨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휴학 중이라는 기쁨은 날씨에 대한 감상을 지우고도 남았다. 낮은 볼륨의 TV 뉴스가 빗소리와 어우러졌다. 이런 금요일 밤도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 속보입니다. 오늘 저녁 7시 30분경 도호쿠 자동차도 무라타 분기점 부근에서 화물차가 앞서가던 승합차와 부딪히면서 6중 추돌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트럭 운전자 등 2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특히 부상자 중에는 일본 배구 국가대표인 카게야마 토비오 선수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캐러멜을 씹던 턱의 움직임이 저도 모르게 멎었다.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수 있을까. 그는 천천히 책에서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뉴스 카메라는 사고 현장을 비춰주고 있었다. 찌그러지고 박살이 난 채 어지러이 뒤엉킨 차들. 그는 눈을 깜빡였다.


  - 카게야마 선수는 지난해부터 해외리그에서 활약해왔으며…….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 경찰은 화물차 운전자가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사고 경위를 조사할…….


  쿠니미는 단물이 다 빠지지 않은 캐러멜을 뱉어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카게야마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 침상에 앉아있었다. 햇수로 8년을 알았지만, 병원복을 입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를 보자 카게야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쿠니미?”

  “…카게야마.”

  조금 가빠진 숨을 고르느라고 제 이름에 대한 대답은 조금 늦게 튀어나왔다. 

  “네가 여기는 어떻게 왔어?”

  “……뉴스에 나와서.”

  질문의 의도를 생각하면 적절한 답은 아니었다. 뉴스를 보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올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실제로 쿠니미는 꼬박 1시간을 카게야마가 있는 병원이 어디인지 알아내기 위해 전화를 돌리는 데에 썼다.

  “괜찮아?”

  그래서 쿠니미는 카게야마가 무언가를 더 묻기 전에 선수를 쳤다. 단어의 울림이 혀끝부터 입천장까지를 까끌까끌하게 훑고 지나갔다. 사이가 틀어지기 전에는 연습 중에 종종 건네곤 했던 말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카게야마와 어떤 매듭도 짓지 못한 채 도쿄로 이사한 쿠니미로서는 영 낯설었다.

  “어.”

  가벼운 부상이야. 카게야마는 깁스를 한 왼팔을 턱으로 가리키며 가볍게 대답했다. 이건 치료받으면 나을 거래.

  “와줘서-”

  “됐어.”

  어설프게 감사인사를 하려는 모습은 꽤 귀여웠지만, 새삼스레 인사를 받을 기분은 아니었다. 말이 끊긴 카게야마가 우물쭈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 나 싫어했잖아.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쿠니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여전하네.”

  “뭐가?”

  “눈치 없는 거.”

  카게야마가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쿠니미는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많이 변해서 꼭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제가 아는 카게야마가 불쑥 고개를 디미니 어쩔 수 없이 즐거웠다. 저 얼굴이 그들 사이의 틈을 메워줄 리 없는데도.



*     *     *



  그날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꿈을 꾸었다. 중학교 1학년의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그나 킨다이치보다 조금 작은 키, 밤톨 같은 동그란 머리, 짧은 머리카락, 크고 푸른빛 도는 눈, 배구공을 잡으면 상기되는 뺨, 따뜻하지만 연습으로 굳은살이 박인 손. 밤늦게까지 경비원 몰래 공원에서 연습을 하다 꾸중을 듣곤 했던, 조금 헐렁한 운동복을 입은 작은 체구의 소년. 

  언제나 그를 신경쓰이게 했던 그 또렷한 눈으로 카게야마는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쿠니미는 홀린 듯이 손을 내밀었다. 카게야마는 그 손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손을 낚아채려 했지만, 그가 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어느새 왕관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새 카게야마는 코트 반대편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쿠니미는 다음날도 카게야마를 찾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쿠니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을 테지만, 바로 어제의 꿈 때문이었다. 파편처럼 박힌 카게야마의 웃는 얼굴이, 잡으려는 순간 사라지던 손이 그의 발걸음을 옮겨다 놓았다. 그는 보호자 역할을 한다는 구실을 댔다. 카게야마의 팀원들이 종종 찾아오기는 했지만, 카게야마의 부모님은 직장 일로 바쁜 탓인지 거의 항상 자리를 비웠고, 카게야마는 대부분 시간을 혼자 보냈다. 나쁘지 않은 핑계였다. 다행히 카게야마도 딱히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쿠니미는 한결 편안하게 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길 닷새째, 쿠니미는 여느 때처럼 카게야마의 품에 배구잡지를 안긴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문득 카게야마가 제 팔을 툭툭 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집에 가, 쿠니미.”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금? 설명을 요구하듯 카게야마를 쳐다보자 카게야마의 시선이 문 쪽을 향했다. 간호사였다.

  “검사받을 게 남았습니까?”

  “쿠니미, 가.”

  “아, 욕창이 생겼나 봐야 해서요-”

  “가라니까!”

  “……욕창이라고요.”

  쿠니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간호사의 말을 황급히 끊으려 목소리를 높인 카게야마가 흔들리는 시선으로 쿠니미를 좇았다.

  “그럼 나가 있겠습니다.”

  침묵도 잠시, 쿠니미는 이내 병실 문을 닫았다.



  “욕창이 왜 생겨.”

  “…환자니까 생기겠지.”

  쿠니미는 문에 기대어 서서 말없이 카게야마를 응시했다. 입원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욕창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면 쿠니미가 없는 시간에도 카게야마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왜? 밖에서 간호사가 나오길 기다리며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려보았지만, 희망적인 가설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개연성이 있는 가정은,

  설마, 아니겠지. 아니어야만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없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카게야마에게 확답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해, 카게야마.”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왜.”

  “내 일이잖아.”

  “네 일이 왜 나랑 상관이 없는데.”

  카게야마는 입을 다물었다. 쿠니미는 튕기듯 문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카게야마에게 다가섰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바로 앞에 서서, 카게야마의 다리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힘을 실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배구를 쉬고 있다고는 하지만 꽤 강한 힘일 터였다. 그가 체중까지 실으려 하자 카게야마는,

  “그만.”

  흡사 목이 졸린 듯한 목소리였다.

  “그만해.”

  쿠니미는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숨이 막힌 사람이 카게야마인지 그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카게야마는 체념한 듯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눈치가 빠르네.”

  아니길 바랐던 가정이 맞았다. 하반신 마비. 게다가 쿠니미의 상식대로라면,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정도니 척수가 완전히 손상된 심각한 축에 속했다.

  “차라리 비웃어.”

  카게야마가 자조 어린 웃음을 토해냈다.

  “나도 웃기니까.”

  카게야마의 다리를 짚은 손이 살짝 떨렸다. 이건 말도 안 됐다. 그는 그 누구도 그를 코트에서 끌어내지 못할 거라 믿었다. 카게야마의 토스를 거부했던 이유 중 하나도,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가 배구를 놓아버릴 리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를. 카게야마의 말대로 우스웠다.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쿠니미.”

  한참 후 창가를 바라보던 카게야마가 침묵을 깼다.

  “…응.”

  “배구를 하지 않는 나도… 싫어?”

  쿠니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른 입술에서는 피 맛이 났다.

  “응.”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퍽 담담하게 들린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는, 네가 싫어. 카게야마.”



*     *     *



  카게야마는 나날이 가벼워졌다. 휠체어에 태우기 위해 카게야마를 안아 들 때마다 쿠니미는 그의 몸무게가 줄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곧 카게야마는 눈에 띄게 말라서, 손발목이 점점 가늘어졌고, 얼굴도 전보다 핼쑥해졌다. 식사를 잘 못해서라는 의사의 진단에 카게야마가 가장 좋아하는 달걀 반숙을 얹은 돼지고기 카레를 사왔지만 카게야마는 몇 숟가락 뜨지 못하고 금방 수저를 놓았다. 의사는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한다 해도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지 못하면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한동안 카게야마는 지속적인 투약과 심리 상담으로 어느 정도 차도가 있는 듯 보였지만, 곧 의사의 말이 옳았음이 드러났다. 쿠니미가 카게야마를 찾은 지 두 달쯤 되던 날, 쿠니미는 TV 리모컨을 카게야마의 손이 닿는 곳에 둔다는 것을 깜빡 잊고 식사를 사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병실 문을 벌컥 열어젖힌 쿠니미의 시야에는 협탁 위에 놓였던 꽃병이 산산이 조각나 바닥에 흩어져 있는 모습과, 유리 조각을 손에 쥔 채 온몸을 떨고 있는 카게야마가 들어왔다.

  “카게야마!”

  탕, 탕. 익숙한 소리에 쿠니미는 곧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가 병실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시사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던 TV가 그새 스포츠 뉴스 코너로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배구공이 코트에 닿는 소리, 박진감 넘치는 해설,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는 선수들. 그 익숙한 광경에 카게야마는 이성을 잃었다.

손에 더 힘을 주었다가는 손가락이 정말로 잘리기라도 할까 봐 쿠니미는 황급히 카게야마에게서 유리 조각을 빼앗아 들었다. TV를 끄고 간호사를 호출한 뒤 벌벌 떨리는 카게야마의 몸을 끌어안았지만 카게야마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쿠니미는 젖어들어 가는 어깨를 모른 척했다.



*     *     *



  그날 이후로 쿠니미는 병원에서 먹고 자며 카게야마의 곁을 지켰다. 카게야마도 그도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배구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배구 잡지도 배구공도 병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꽃병을 깬 날 이후로 카게야마가 배구라는 화제를 꺼내든 것은 하루뿐이었다.

  “쿠니미, 자기 싫어.”

  잠에 취한 목소리로 카게야마는 눈을 껌뻑였다.

  “왜?”

  “배구를 하는 꿈을 꿔. …아침에 깨어나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내 몸이 끔찍해. 게다가 이제 꿈속에서도 그게 꿈이라는 걸 알아서 싫어.”

  “그러면 자기 싫은 게 아니라 깨기 싫은 거네.”

  “응.”

  네 꿈속에는 내가 없겠구나. 하지 못한 말을 삼키며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었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쿠니미, 나를 싫어한다고 했지?”

  그는 카게야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게야마가 그 시선을 느낀 듯 다시 눈을 떴다.

  “그러면 내가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 거지?”

  “……응.”

  쿠니미는 제 대답이 너무 늦게 나오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네가 죽어도 난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거야.”

  안심했다는 듯 그대로 눈을 감는 카게야마에게 그는 속삭였다.

  “난 정말 네가 미워, 카게야마.”

  매 순간 생기가 가득했던, 내게 소리 지르고 화를 내고, 인상을 찌푸리던 그 중3 시절의 너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네가, 너무 미워. 그는 카게야마를 따라 눈을 감았다.



*     *     *



  다음날 밤 쿠니미는 카게야마에게 약을 건넸다. 카게야마는 한 밤만 자면 엄마가 데리러 올 거라는 말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얼굴로 약을 삼켰다. 그는 침대에 기댄 채 쿠니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쿠니미는 그와 시선을 맞추며 언제나 있었던 일인 양 카게야마를 토닥였다. 사실 그가 상상한 미래에 이런 장면은 없었다. 그는 다만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이에게는 죽음이 또다른 삶일 수도 있음을 인정했을 뿐이었다.

  “미안해, 아키라.”

  그의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카게야마가 한참 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쿠니미는 살짝 웃어주었다.

  “그거 말고는 할 말 없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그런 시시한 말들 말고.

  “음.”

  카게야마가 신음했다.

  “……사실은, 같이 배구하자고 하고 싶었는데.”

  카게야마가 조용히 말했다. 카게야마를 토닥이던 손이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느리게 움직였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그날, 이후에. 우리가 한 팀인 적이 없었잖아. 그래서 공원에서라도 한 게임 하자고. 이제는 너희 타점도, 플레이 스타일도, 궁금해졌으니까.”

  그런데 너무 늦어버렸네, 카게야마가 말을 맺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풀 기회가 있겠지, 한번쯤은 우리도 웃으면서 배구를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쿠니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째서 그렇게 흐릿한 미래를 기약했을까. 쿠니미는 뜨거워진 눈가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다행히도 그의 손은 아직 차가웠다.

  “그래.”

  한참 후 그는 손을 내렸다.

  “그러면 다음에는 우리가 이기자.”

  쿠니미가 미소지었다. 그 말을 듣자 카게야마의 표정이 풀어졌다. 느릿하게 눈을 떠 쿠니미를 한 번 보더니 카게야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꼭 잠이 든 것 같았다.

  한참 후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손에서 종이를 빼냈다. 카게야마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 못난 글씨로 꾹꾹 써내려간 두 문장. 카게야마답게 여전히 서툴렀지만 거짓이라고는 없는 글이었다. 쿠니미는 잠시 망설이다 그 아래에 정갈한 필체로 똑같이 두 문장을 적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쉬고 싶습니다.

  카게야마를 두 번씩이나 혼자 둘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킨다이치, 너까지 따라오면 평생 락교라고 놀릴 거야. 


  휘슬이 울린 지는 오래되었으나 두 선수는 조금 늦게 경기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