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폴 2016. 6. 5. 23:07





  쌍둥이 형 토비오는 집중력이 1분을 못 갔다. 블록을 쏟아서 조립하다가 금세 질려 무너트리고 새로운 인형을 가져왔다. 인형의 팔다리를 움직여 혼자서 ‘왕자님, 공주님’ 거리며 재잘거리다 내팽겨 치고 고무공을 가져와 저글링을 한답시고 요란하게 “꺄!” 거렸다. 토비오의 관심을 얻지 못한 장난감들이 처참하게 거실바닥에 어질러져 있었다. 


  그에 비해 쌍둥이 동생 아키라는 책만 쥐어주면 한 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누가 부르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조용했다. 잠투정도 없어, 몇 번 안고 등을 토닥여주면 쉽게 어깨에 기대 잠들었다. 부모님은 그런 토비오와 아키라를 보며 “형이랑 동생이 성격이 바뀌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하곤 했다. 소파 위에 얌전히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아키라가 요란한 토비오를 보고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토비오. 너 이리 와.”

  “그래.”


  공중에서 고무공이 처참히 바닥으로 떨어져 저만치로 굴러갔다. 토비오는 상관하지 않고 아키라의 옆으로 와 앉았다. 아키라와 똑같은 자세로 무릎을 쭉 펴고, 책을 잡는 대신에 허벅지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렸다. 아키라는 토비오가 편히 볼 수 있도록 토비오 쪽으로 책을 밀어주었다. 책 너머로 하얀 양말을 신은 발 네 개가 보였다. 양말 끝에는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레이스가 달려있었다. 부모님의 취향이었다. 아키라는 얌전히 발끝을 모은 채였고, 토비오의 발은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거렸다. 팔뚝에 와 닿는 따뜻한 토비오의 체온이 좋았다. 아키라가 바짝 몸을 붙이자 토비오도 아키라 쪽으로 몸을 더 웅크렸다.


  책 페이지가 몇 장 넘어가기도 전에 토비오는 흥미가 떨어진 듯 소파에서 껑충 뛰어내렸다. 아키라는 뽈뽈거리며 어질러진 장난감 속으로 들어가는 토비오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따뜻한 체온을 뺏긴 게 화가 났다. 아키라는 읽던 책을 소파에 던지고 토비오를 쫓아가 얄미운 팔뚝을 꼬집었다.


 “아프다.”


  토비오가 팔뚝을 문지르며 말했다.


  “멍청이.”

  “멍청이 아냐.”

  “멍청이.”


  토비오가 씩씩 거리더니 아키라에게 달려들었다. 양손에 장난감을 든 채여서 손을 쓰지 못하고 입을 ‘앙’벌려 아키라의 어깨를 깨물었다. 아키라도 지지 않고 토비오의 팔뚝을 깨물었다. 입 안에 뜨거운 체온이 확 들어차서 꼭 불덩이를 삼킨 것 같았다.


  거실에서 뒤엉켜 막 이가 난 소동물처럼 서로를 깨물고 있던 쌍둥이를 떼어놓은 것은 엄마였다. 엄마가 토비오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올렸다.


  “토비오, 동생을 괴롭히면 못 써!”

  “아키라가 나 물었어!”


  엄마는 쌍둥이가 서로를 깨문 자국을 손으로 문질러주고 벽에 세웠다. 토비오는 엄마가 저만 가지고 뭐라 그런 게 분한지 씩씩거렸다. 아키라는 그런 토비오를 힐끔 보고는 깨물린 어깨를 몇 번 만지작거렸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 자, 사과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쌍둥이가 두 손을 맞잡게 하고 볼에 뽀뽀를 하게했다. 아키라가 먼저 토비오의 손을 잡고 “미안해, 토비오.” 사과했다. 토비오의 보드라운 볼에 꼭 그만큼 보드라운 아키라의 입술이 닿았다. 아키라가 먼저 사과하자 마음이 좀 누그러졌는지 토비오도 아키라의 손을 잡았다.


  “나도 물어서 미안해, 아키라.”


  쌍둥이가 화해하는 것을 지켜보던 엄마는 저녁준비를 마치러 자리를 떴다. 토비오는 아키라의 볼에 입 맞추려 얼굴을 가까이했다. 하지만 토비오의 입술에 닿은 건 아키라의 볼이 아닌 아키라가 입고 있는 셔츠였다. 


  토비오는 뒤꿈치를 바짝 들고 자신의 뽀뽀를 피한 아키라를 쳐다보았다. 똑같이 뒤꿈치를 들고 아키라의 볼에 뽀뽀하려 다가가자 이번에는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더 빳빳이 든다. 토비오가 몇 번이고 입술을 내밀고 아키라에게 뽀뽀를 하려고 했지만 아키라가 세게 도리질을 치거나 자꾸 도망가서 하지 못했다. 


  “엄마...”


  아키라의 행동을 이르려고 엄마를 애처롭게 불러봤지만 저녁준비로 바쁜 엄마는 이런 상황을 보지 못하고 “토비오, 가지고 논 건 토비오가 치워야지?” 말할 뿐이었다. 토비오가 아키라에게 “뽀뽀해.”라고 말해보았지만 “멍청이랑은 뽀뽀 안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토비오가 울상을 짓고는 어질러진 장난감을 품안 가득 안고 바구니에 한꺼번에 집어넣었다. 뒤집어져서 장난감 버튼이 눌린 자동차에서 “빵-빵-”소리가 들려왔다. 거실 저 편에서 다시 한 번 토비오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술이 난 토비오는 빵빵거리는 자동차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건전지가 빠지면서 소리가 멈췄다. 바닥에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소리에 그제야 엄마가 달려왔다.


  “나 멍청이 아니고 아키라 형아야.”


  토비오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그제야 뚝뚝 떨어졌다. 엄마가 토비오를 달래보려 손을 뻗자 엄마의 손등을 물었다. 토비오는 손등으로 눈을 세게 비비며 “다 미워.” 소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토비오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미안하다고 할게.”


  아키라의 의젓한 말에 엄마가 아키라의 머리를 쓰다듬고 안심하며 돌아갔다. 소파위에 자기가 집어던진 동화책을 정리하고 소파에 쿠션도 가지런히 했다. 토비오가 집어던진 자동차도 집어 다시 바구니에 넣어놓았다.


  아키라는 살금살금 쌍둥이 방으로 들어갔다. 토비오는 자기 몫의 이불을 꺼내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침대가 출렁이지 않도록 무릎걸음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볼에 눈물자국을 매달고 두 손을 입 근처에 모은 채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었다. 아키라는 토비오의 얼굴에 난 눈물길을 검지손가락으로 따라 그었다. 토비오가 간지러운지 볼을 씰룩거리며 엄지손가락을 우물거리던 입에서 우는 소리를 냈다. 얼른 손을 뗀 아키라는 토비오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잠잠해진 걸 확인한 아키라는 토비오를 마주보고 누웠다. 손가락을 문 이 사이로 빨간 혀가 언뜻 보였다. 아키라는 토비오가 물고 있는 손을 감싸 쥐고 뺐다. 입이 허전해진 토비오가 징징거리며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우느라 속눈썹이 젖어있었다. 아키라는 토비오가 깨기 전에 얼른 자기 엄지손가락을 토비오에게 물려주었다. 토비오가 그제야 다시 눈을 감고 입 안에 손가락을 열심히 빨았다. 토비오의 입술이 아키라의 손가락을 감싸고 뾰족한 혀가 단정한 손톱 끝을 핥았다. 아키라는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손가락에 토비오 앞니의 감촉이 선연하게 느껴졌다. 몇 번 더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던 아키라는 토비오가 아까 전까지 물고 있던 토비오의 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꼭 토비오와 같이 엄지를 물었다. 쌍둥이는 엄마가 저녁을 먹으러 깨우러 오기 전까지 오래도록 잠들어 있었다.



  아키라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차분했다. 그 모습에 친구들은 만두를 먹고 가자는 권유를 더 이상 하지 못했다. 눈치가 빠른 친구들이라 다행이었다.


  친구들이 생각한 것처럼 아키라는 화가 나 있었다. 그 멍청이 토비오가 오늘도 도망쳤다. 얼마못가 꼬리가 잡힐 게 뻔한데. 바로 지금처럼.


  “토비오. 너 요구르트 또 먹게?”

  “응. 또 줘.”


  아키라도 본 적이 있는 친구였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토비오와 반이 갈리고 멍청이 토비오에게도 친구라는 존재가 생겼다. 토비오에게 요구르트를 건네주던 친구가 아키라를 먼저 발견했다.


  “야, 네 동생.”


  친구가 눈짓을 하자 토비오가 요구르트를 먹는 걸 멈추지 않은 채 몸을 틀어 아키라를 본다. 볼이 홀쭉해질 때까지 요구르트를 다 마시고 나서야 “아키라!” 아는 척을 한다. 저딴 게 뭐가 좋다고. 아키라는 그런 토비오를 지나쳐 문 안으로 들어갔다. 


  “또 먹을래.”

  “너 그러다 배탈나.”


  아키라를 뒤따라오는 대신 뒤에서 친구와 얘기하는 토비오의 소리가 들렸다. 아키라가 몸을 돌려 그 모습을 빤히 보았다. 친구가 아키라의 눈치를 보며 요구르트를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다 눈치를 채는데, 저 멍청이 토비오만 몰랐다.


  “토비오.”

  “응?”


  아키라가 부르는 소리에 토비오가 아까처럼 몸을 틀어 쳐다본다. 요구르트를 먹다 숨이 차는지 잠시 빨대에서 입을 떼고 쌕쌕거린다. “우리 이거 또 사먹자!” 아키라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키라에게서 시선을 떼고 친구를 잡아 끈다. 가운데서 친구만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토비오.”


  아키라의 말을 듣지 못한 토비오가 “빨리.” 친구의 팔짱을 끼고 발걸음을 뗀다. 친구가 토비오를 한 번, 아키라를 한 번 보며 마지못해 토비오에게 끌려간다.


  “형.”


  토비오의 고개가 반짝 들리고 아키라와 시선을 맞춘다. 아키라가 연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부른다. 형.


  “집에 가자.”

  “......”

  “얼른.”

  “응.”


  너 혼자 가. 동생이랑 있어야 해. 떨어질 것 같지 않던 팔짱이 풀리고 토비오가 친구의 등을 떠민다. 그제야 친구는 안심한 표정으로 잘 가. 인사했다. 집 안으로 쌍둥이가 사라졌다. 친구는 팔뚝을 쓰다듬으며 어깨를 부르르 한 번 떨었다. 쌍둥이를 볼 때마다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아키라는 들어오자마자 책가방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너 진짜 화나게 한다.”

  “내가 뭘?”


  토비오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아키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생각난 듯 가방에서 만두 포장지를 꺼냈다.


  “아키라랑 먹으려고 안 먹고 포장해왔어.”


  토비오가 칭찬을 바라며 아키라에게 만두를 내밀었다.


  “너 짜증나.”

  “형한테 너라고 하면 나빠, 아키라.”

  “네가 더 나빠.”


  토비오의 손에 들려있는 만두를 낚아채 머리맡에 둔 아키라가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여전히 상황파악이 안된 토비오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는다.


  “사과해, 토비오.”


  그 말에 토비오가 아키라가 앉아있는 침대 곁으로 가 앉아 아키라의 볼에 입을 맞춘다.


  “미안해.”


  뭘 잘못한지도 모르면서 말로는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고분고분 아키라의 말에 따른다.


  “화 안 풀려.”


  그러자 토비오는 새부리처럼 입술을 모아 고개를 틀어 아키라의 입술에 ‘촉’소리 나게 입을 맞춘다. 입을 맞춘 후에도 아키라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있어 아키라의 뺨을 잡고 몇 번 더 ‘쪽쪽’거린다. 몇 번을 더하고 나서야 아키라의 얼굴에 미소가 비친다. 그 모습에 안심하며 토비오도 따라 웃는다.


  “아까 너라고 해서 미안해, 형.”

  “응.”

  “사과할게.”


  이번에는 아키라가 토비오의 얼굴로 다가왔다. 토비오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하지만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떠도 아키라의 얼굴이 떨어질 줄 몰랐다. 가까운 거리에서 아키라의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고 토비오를 보고 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사각거리는 속눈썹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입 벌려.”


  아키라의 말에 토비오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입을 벌렸다. 쌍둥이의 혀가 토비오의 입안에서 얽혔다. 아키라의 혀가 시원하고 촉촉해서 토비오는 기분이 좋았다. 얌전히 입안에 있던 혀를 들어 넘어온 아키라의 혀를 같이 마주 대며 핥았다. 으응...이상한 소리가 목 안에서부터 났다. 숨이 차 아키라의 어깨에 두 손을 짚고 아키라를 떼어냈다. 쌍둥이가 몰아쉬는 숨만이 방안에서 났다.


  “화...다 풀렸어.”


  자신이 화가 나 아키라가 이를 풀어주려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아키라는 토비오의 말을 못들은 척하고 어깨를 잡고 있는 토비오의 손을 떼어내 잡았다. 아키라가 다시 한 번 다가왔다. 밀어내려 했지만 고개를 틀어 아까보다 더 깊숙하게 입을 맞춰온다. 어느새 토비오도 아키라의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틀며 입을 맞췄다. 아랫배에 풍선을 넣은 것 마냥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아까 먹은 요구르트 때문인지 뱃속이 간질거리며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눈을 꼬옥 감은 채 무릎을 비비며 어쩌지 못하고 다리를 꼬았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 너머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키라, 토비오. 학교 다녀왔니?”  


  토비오가 잡힌 손 그대로 아키라의 가슴을 밀어내자 이번에는 순순히 밀려났다. 아키라도 눈을 감고 있었는지 감은 눈꺼풀이 열리며 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자신이 아무리 바보라지만 토비오는 어쩐지 이 순간을 엄마에게 들키면 안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