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将軍 2016. 6. 5. 23:02






  나는 이따금 의문을 품는다. 언젠가의 미래를 그려보고는, 곧 고개를 가로젓는다. 너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왜냐면 네게는 보이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네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까지나 어둠길이며, 너는 이 길 위의 나를 알아차리기에는 밤눈이 그리 좋지 않다. 아니, 사실은 네 시야에 이 어둠길은 여백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미 여백으로 인식한 곳을 새삼스레 관찰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렇게 무의미한 여백의 공간 위에서 나는 언제나 너를 지켜본다. 너는 어둠길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광원 아래 있다. 네 동그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빛줄기는 폭포마냥 쏟아져, 네 발치에 그림자로 괸다. 무의미는 곧 무미건조함이고, 무색과 무취와 무미의, 온갖 감각의 부재이다. 내가 네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

 

  네가 손톱을 다듬는 뒷모습을 몇 번이나 지켜보았다. 나는 그 뒷모습을 지켜볼 때면, 네 짦은 머리카락이 닿는 뒷덜미를 줄곧 응시하며 온갖 말을 새겼다. 그건 말하기 위해서 새겼던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담긴 기억들을 새겼다고 해야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아무렇지 않게 나눌 수 있었던 대화를 속으로 주워섬겼다. 자문하고 자답했다. 그러나 문답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어린 향수를 곱씹는 게 목적이므로, 실제로 입술을 달싹이고, 벙긋거려, 조물조물 말을 빚어내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혀가 입안에서 홀로 말의 궤적을 쫓을 때면, 입천장은 더없이 높아진다. 마치 누군가가 저 위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혀가 저 밑으로 누군가에 의해 끌어내려진 것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이 헛된 쫓음 끝에 지친 혀가 다시 입천장에 닿을 때면, 입안은 너무 넓은 공간이라는 것을 되새김질 한다. 이 여백 역시 채워지지 않는 여백이다.

 

  너는 네 그림자의 모습을 모른다. 네 발치에서 너울거리며 늘어지는 그림자가 어떤 모습을 그리는지, 너는 조금도 알지 못한다. 너는 그림자 위에 서있지만, 네 눈은 언제나 지복의 세계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너는 지상의 세계, 그 이상의 세계, 저 탑의 세계, 건설자의 손으로 빚어졌기 때문이다. 너는 머리와 손 사이의 중재자는 아니다. 너는 네 발치의 그림자 대신, 탑 위의 낙원을 바라본다. 왜냐면 너는 그 천부의 세계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흘러내려 괸 그림자 속에서 나는 너를 바라본다.

 

  나는 이따금.

 

  너를 이곳으로 끌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너는 추락하는 것의 공포를 모른다. 너는 떨어지는 것의 두려움을 모른 채 저 위만을 안다. 밑을 알지 못하는 자인 너는 당연히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그러면 너는 네 밑에서 기어오르는 자들 역시도 모를 테지. 그보다 더 밑에서, 더 까마득한 밑에서 너를 바라보는 이들은 더욱 모를 것이다. 너는 동경과 원망 위에 있다. 너는 차안이 아니라 피안의 세계에 있기에, 이 모든 동경과 원망은 사실 부질없는 것이다.

 

  네 위로 떨어지는 빛은 저 밑으로 쏟아지고, 내 손가락 끝에 닿는 것은 그 그림자다. 나는 언제나 네 그림자나 간신히 어루만진다. 손톱 어귀와 손가락 마디와 손샅, 손바닥. 손목. 그림자가 야금야금 먹어가는 손을 바라본다. 나는 네 그림자를 손에 쥔다. 그게 고작이다.

 

  나는 저 먼 곳을 응시한다. 까마득히 먼 차안에서는, 마치 피안과 맞닿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눈의 착각일 뿐이다. 차안과 피안은 맞닿지 않으며, 너는 피안 위에 있고, 나는 차안의 영역을 더듬는 게 고작이다.